1. 정치, 당신의 이야기: 왜 모든 선택은 결국 정치적인가?
정치.
이 단어를 들으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아마도 국회 의사당의 소란스러운 풍경,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권력 다툼, 혹은 복잡하고 골치 아픈 정책 논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많은 이들이 정치를 '그들만의 리그' 혹은 '나와는 먼 이야기'로 여기곤 하죠.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아침에 일어나 어떤 커피를 마실지, 어떤 교통수단을 이용해 출근할지 결정하는 순간부터 시작해볼까요?.
사소해 보이는 이 선택들조차 사실은 보이지 않는 정치적 맥락 속에 놓여 있습니다.
내가 마시는 커피 한 잔에는 국제 무역 관계와 노동자의 인권 문제가 얽혀 있을 수 있고, 내가 이용하는 대중교통 시스템은 세금 분배와 도시 계획이라는 정치적 결정의 산물입니다.
시간과 돈이라는 한정된 자원을 어떻게 배분할지 결정하는 모든 행위, 관계 속에서 영향을 주고받는 모든 상호작용이 넓은 의미에서 '정치'의 영역에 포함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정치를 너무 거대하고 딱딱한 틀 안에 가두어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그 틀을 조금 넓혀보고자 합니다.
정치를 '권력'과 '선택'이라는 두 가지 핵심 키워드를 통해 새롭게 조명하며, 우리의 일상이 어떻게 정치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지, 그리고 그 속에서 우리는 어떤 존재인지를 함께 탐색해보고자 합니다.
당신의 모든 선택이 왜 결국 정치적인 질문으로 이어지는지, 그 여정을 지금 시작합니다.
2. 보이지 않는 손, 권력: 가정에서 사회까지, 힘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정치 이야기를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개념이 바로 '권력(Power)'입니다.
권력 역시 '정치인'이나 '정부' 같은 거대 주체만의 전유물로 생각하기 쉽지만, 실상은 훨씬 더 미시적이고 일상적인 차원에서 작동합니다.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Max Weber)는 일찍이 정치를 "권력의 작용"으로 통찰했습니다.
그는 권력을 '자신의 의지를 타인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관철할 수 있는 능력'으로 보았죠.
조금 어렵게 들리나요?.
우리 주변의 예를 통해 좀 더 쉽게 이해해 봅시다.
부모님이 자녀에게 밤 10시 통금 시간을 정하고 지키도록 하는 상황을 생각해볼까요?.
이는 단순히 '규칙'을 넘어, 부모님이 가진 경제적 지원 능력, 보호자로서의 역할, 혹은 자녀에 대한 애정 등 다양한 형태의 '힘'을 바탕으로 자녀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입니다.
즉, 부모는 자신이 가진 여러 형태의 권력을 사용하여 '밤 10시 귀가'라는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는 것이죠.
이것이 바로 가정 내에서 일어나는 미시적인 정치, 즉 권력의 작동입니다.
권력은 이처럼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 삶 곳곳에 스며들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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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에서의 권력: 상사의 지시, 회사의 규율, 연봉 협상 과정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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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에서의 권력: 특정 브랜드의 명성, 독과점 기업의 가격 결정력, 소비자의 불매 운동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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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에서의 권력: 연인 관계에서의 주도권, 친구 사이의 영향력, 전문가의 의견 등.
이처럼 권력은 단순히 강압적인 힘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때로는 동의를 통해, 때로는 설득을 통해, 때로는 암묵적인 영향력을 통해 작동하며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질서와 관계를 형성하는 보이지 않는 손과 같습니다.
이러한 권력의 작동 방식을 이해하는 것은 우리 사회와 삶을 움직이는 근본적인 힘의 정체를 파악하는 첫걸음입니다.
3. 선택이라는 결과물: 가치 배분의 현장을 들여다보다
권력이 정치의 보이지 않는 동력이라면, '선택(Choice)'은 그 결과로 나타나는 가시적인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치학자 데이비드 이스턴(David Easton)은 정치를 "가치의 권위적 배분(authoritative allocation of values)"이라고 정의하며, 권력만큼이나 '선택'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여기서 '가치'란 돈, 지위, 기회, 안전, 지식 등 우리가 중요하게 여기는 모든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권위적 배분'이란, 사회 내에서 이러한 희소한 가치들을 누가, 어떻게, 얼마나 가질지를 결정하는 과정을 말합니다.
즉, 정치는 결국 '무엇을 선택하고, 그 선택을 어떻게 사회적으로 공인하고 집행할 것인가'의 문제인 셈입니다.
다시 통금 시간 이야기로 돌아가 볼까요?.
'밤 10시'라는 통금 시간은 앞서 말했듯 부모와 자녀 사이의 권력 관계를 반영하는 하나의 '선택'입니다.
이 선택은 단순히 시간을 정하는 것을 넘어, 자녀의 자유 시간(가치)과 부모의 염려 및 통제권(가치) 사이에서 이루어진 '가치의 권위적 배분' 결과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부모는 자신의 권위를 통해 '10시'라는 기준을 설정하고, 이 선택은 (적어도 그 가정 내에서는) 구속력을 갖게 됩니다.
이스턴의 '가치의 권위적 배분'이란?
사회에는 돈, 권력, 명예, 기회 등 모두가 원하는 '가치'가 존재하며, 이는 한정되어 있습니다.
정치는 이러한 한정된 가치를 사회 구성원들에게 어떻게 나누어 줄지 결정하고(배분), 그 결정이 구성원들에게 받아들여지고 지켜지도록 만드는(권위적) 과정입니다.
예를 들어, 세금 제도는 사회적 가치인 '돈'을 어떻게 거두고(배분) 사용할지를 법률(권위)로 정하는 대표적인 정치 과정입니다.
우리가 매일 접하는 사회의 수많은 규칙, 제도, 정책들은 모두 이러한 '선택'의 결과물입니다.
- 최저임금 결정: 노동의 가치와 기업의 이익 사이의 배분 선택.
- 대학 입시 제도: 교육 기회라는 가치의 배분 방식 선택.
- 부동산 정책: 주거 안정과 시장 자유라는 가치 사이의 배분 선택.
- 환경 규제: 개발 이익과 환경 보존이라는 가치 사이의 배분 선택.
이러한 선택들은 결코 중립적이거나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 이면에는 다양한 집단들의 이해관계, 그들이 동원하는 권력, 그리고 치열한 협상과 갈등 과정이 숨어 있습니다.
따라서 어떤 '선택'이 이루어졌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그 사회의 권력 구조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가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중요한 단서가 됩니다.
4. 힘겨루기의 기록: 권력 이동은 어떻게 선택을 바꾸는가?
권력과 선택은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권력은 특정 선택을 가능하게 하는 힘이며, 선택은 권력 관계의 결과를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중요한 점은 이 둘의 관계가 고정불변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고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즉, 권력의 균형이 달라지면,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선택'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자본가와 노동자의 관계 변화는 이를 잘 보여주는 역사적 사례입니다.
산업혁명 초기, 자본가들은 막강한 경제적 권력을 바탕으로 장시간 노동, 저임금, 열악한 작업 환경 등 노동자에게 불리한 '선택'을 강요했습니다.
당시 노동자들은 힘이 미약했기에 이러한 선택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죠.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상황은 달라졌습니다.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단체 행동(파업 등)을 통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노동 운동'은 노동자들의 집단적 힘, 즉 새로운 형태의 권력을 만들어냈습니다.
노동자들의 권력이 점차 강화되면서, 과거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새로운 '선택'들이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습니다.
주 5일 근무제, 최저임금제, 산업안전보건법 등은 바로 이러한 권력 이동의 결과로 나타난 새로운 '가치 배분'의 모습입니다.
이처럼 권력과 선택의 역학 관계를 분석하는 틀은 다양한 사회 현상을 이해하는 데 유용합니다.
분야 | 과거 (권력 불균형) | 현재/미래 (권력 이동 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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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인권 |
여성의 사회 참여 제한, 가부장적 제도 |
여성 운동, 성 평등 의식 확산 → 성 평등 정책 강화, 유리천장 해소 노력 |
소비자 권리 |
기업 중심 시장, 정보 비대칭 |
소비자 운동, 온라인 정보 공유 → 소비자 보호법 강화, 기업의 사회적 책임 요구 증대 |
환경 문제 |
개발 우선주의, 환경 규제 미미 |
환경 운동, 기후 위기 인식 확산 → 환경 규제 강화, 지속가능한 발전 추구 |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끊임없는 힘겨루기의 기록이며, 그 결과로서의 선택들이 모여 사회의 모습을 만들어갑니다.
권력 관계의 변화를 민감하게 포착하고 그것이 가져올 선택의 변화를 예측하는 것은, 복잡한 세상을 읽어내는 중요한 열쇠가 될 것입니다.
5. 정치적 안목 기르기: 세상을 꿰뚫는 힘, 권력과 선택의 균형 감각
지금까지 우리는 정치를 권력과 선택이라는 두 가지 렌즈를 통해 살펴보았습니다.
정치는 더 이상 나와 상관없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 삶의 모든 결정과 관계 속에 깊숙이 스며들어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나마 느끼셨을 겁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바로 '정치적 안목'을 기르는 것입니다.
정치적 안목이란, 단순히 정치 뉴스에 관심을 갖는 것을 넘어, 우리 주변의 현상과 관계 속에 숨어 있는 권력의 역학 관계를 읽어내고, 그 결과로 나타나는 다양한 선택들의 의미를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마치 강물의 표면 아래 숨겨진 물살의 흐름을 파악하는 것처럼, 사회 현상의 이면에 작동하는 힘의 원리를 이해하는 것이죠.
다음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져보며 정치적 안목을 점검해 보세요.
- 이 상황에서 누가 힘(권력)을 가지고 있는가?.
(어떤 종류의 힘인가? 경제력, 지위, 정보, 네트워크 등) - 이 결정(선택)은 누구에게 유리하고 누구에게 불리한가?.
(어떤 가치가 어떻게 배분되고 있는가?) - 이 결정(선택)의 이면에는 어떤 이해관계와 갈등이 숨어 있는가?.
- 시간이 지나면서 권력 관계는 어떻게 변해왔는가?.
그 결과 선택은 어떻게 달라졌는가?. - 더 나은 선택, 더 공정한 가치 배분을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
이러한 질문들을 던지는 습관은 우리가 세상을 보다 깊이 있게 이해하도록 돕습니다.
예를 들어, 새로운 기술의 등장(예: 인공지능)이 가져올 사회 변화를 분석할 때, 단순히 기술의 편리함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기술이 기존의 권력 관계를 어떻게 재편하고(예: 특정 기업의 독점 강화, 일자리 변화), 어떤 새로운 사회적 가치 배분 문제(예: 데이터 프라이버시, 알고리즘 편향성)를 야기할지 예측해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정치적 안목은 우리가 개인적인 차원에서 겪는 문제들을 더 넓은 사회 구조적 맥락에서 이해하도록 돕습니다.
내가 겪는 취업난이나 주거 불안정 문제가 단순히 개인의 능력 부족 때문만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권력 구조와 자원 배분 방식이라는 더 큰 정치적 선택의 결과일 수 있음을 인식하게 되는 것이죠.
이러한 인식은 문제의 본질을 정확히 파악하고, 더 나아가 해결책을 모색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6. 외면에서 참여로: 더 나은 '나'와 세상을 위한 정치적 감수성 회복
정치는 때로 우리를 실망시키고, 무력감을 느끼게 만들기도 합니다.
복잡하고 거대한 구조 앞에서 개인의 힘은 미약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살펴본 것처럼, 정치는 우리의 삶과 결코 분리될 수 없는 실체입니다.
정치를 외면하는 것은 결국 우리 삶의 중요한 부분을 스스로 결정할 기회를 포기하는 것과 같을지도 모릅니다.
권력과 선택이라는 렌즈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것은, 단지 세상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한 지적 유희에 그치지 않습니다.
이는 우리 스스로가 정치적 주체임을 자각하고, 우리를 둘러싼 권력 관계 속에서 더 나은 선택을 만들어가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입니다.
내가 속한 공동체(가정, 직장, 지역사회 등)의 의사결정 과정에 관심을 기울이고, 부당하거나 불합리한 '선택'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작은 행위들이 모여 결국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될 수 있습니다.
정치에 대한 냉소나 무관심에서 벗어나, 우리 삶을 둘러싼 정치적 역학 관계를 이해하고 그 안에서 자신의 역할을 찾아나서는 것.
이것이 바로 더 나은 '나'를 만들고, 우리가 발 딛고 선 이 세상을 조금 더 나은 곳으로 만들어가는 여정의 시작이 아닐까요?.
권력과 선택의 그물망 속에서,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세상을 만들어가고 싶으신가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여정에 이 글이 작은 등불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