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식 '공정 무역'의 계산법: 상호 관세는 어떻게 만들어졌나?
최근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발표한 '상호 관세'는 전 세계를 혼란에 빠뜨렸다.
겉으로는 상대국이 미국에 부과하는 만큼 똑같이 관세를 매겨 '공정성'을 추구하는 듯 보인다.
트럼프는 이 조치를 "해방의 날"이라 표현하며, 마치 정의를 실현하는 결단인 양 포장했다.
그러나 이 상호 관세율의 산정 방식은 경제 논리와는 거리가 멀다.
놀랍게도, 특정 국가에 대한 상품 무역 수지 적자액을 총 수입액으로 나눈 뒤, 그 값을 다시 절반으로 줄여 관세율을 결정했다.
(예: 한국의 경우 (적자액 660억 달러 / 수입액 1315억 달러) / 2 ≈ 25% -> 26% 적용)
복잡한 경제 현상을 초등학생 수준의 산수 문제로 치환해 버린 것이다.
이런 황당한 계산법에 기반한 정책이 과연 '공정 무역'이라는 이름에 걸맞을까.
논리적 오류 투성이: 상품 수지 적자가 관세 탓이라는 착각
트럼프 행정부의 계산법은 여러 심각한 논리적 오류를 내포한다.
상품 무역 수지만 반영하는 편협함
첫째, 이 계산은 오직 '상품' 무역 수지만을 고려한다.
미국이 압도적인 경쟁력을 가지며 막대한 흑자를 기록하는 '서비스' 수지(금융, 기술, 지식재산권 등)는 철저히 배제되었다.
자신들이 이익을 보는 영역은 계산에서 제외하고, 손해 보는 영역만 부각하여 상대국이 미국을 약탈하고 있다는 주장을 펼치는 것은 명백한 아전인수다.
비관세 장벽의 자의적 해석
둘째, '비관세 장벽'을 고려한다고 했지만, 그 기준과 계산 방식은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았다.
미국과 FTA를 체결하여 대부분 품목에 관세가 없는 한국(평균 관세율 0.79%)에 대해 미국이 50%의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근거는 오직 앞서 언급한 '적자액/수입액' 공식뿐이다.
이는 사실상 무역 적자 자체가 상대국의 불공정한 장벽 때문이라는 자의적인 판단을 전제로 한다.
국가별·품목별 교역 구조 완전 무시
셋째, 국가마다, 품목마다 다른 복잡한 교역 구조를 완전히 무시한다.
가령 미국이 A국으로부터 첨단 반도체 부품을 대량 수입하지만, A국에는 농산물만 소량 수출한다고 가정해 보자.
이런 상황에서 양국 간 무역 적자를 근거로 모든 품목에 일괄적인 고율 관세를 부과하는 것은 경제적으로 아무런 의미가 없다.
반도체 부품 관세는 미국 첨단 산업에 타격을 주고, 농산물 관세는 A국에 미미한 영향을 줄 뿐이다.
이런 '미스매치'는 모든 국가, 모든 품목에서 발생할 수밖에 없다.
심지어 사람이 살지 않는 남극 근처 섬이나 북극해 군사 기지까지 관세 부과 리스트에 포함된 것은 이 결정이 얼마나 주먹구구식으로 이루어졌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엑셀로 그냥 쭉 긁었다"는 비아냥이 나올 정도다.)
시장은 벽을 돌아 흐른다: 관세가 무역 적자를 해결 못 하는 이유
트럼프 행정부는 상호 관세를 통해 무역 적자 축소, 자국 산업 보호, 재정 수입 증대를 목표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관세 장벽이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는커녕 오히려 역효과를 낼 가능성이 높다.
무역 적자의 근본 원인 외면
무역 수지 적자는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문제나 관세율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거시 경제 구조와 더 깊은 관련이 있다.
미국 경제는 구조적으로 저축보다 투자가 많고, 소비 성향이 높다.
즉, 국내 생산만으로는 수요를 감당할 수 없어 해외에서 물건을 사 올 수밖에 없는 구조이며, 이것이 만성적인 무역 적자의 근본 원인 중 하나다.
이런 구조적 요인을 외면한 채 관세라는 벽을 쌓는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물길을 막으면 다른 길로 돌아 흐르듯, 시장은 반드시 새로운 경로를 찾는다.
2018년 관세 전쟁의 교훈
2018년 트럼프 1기 행정부가 중국에 고율 관세를 부과했을 때를 복기해 보자.
당시 트럼프는 무역 적자 개선을 장담했지만, 결과는 달랐다.
중국산 제품 공급은 멕시코, 베트남 등 다른 국가로 빠르게 이전되었고, 미국의 무역 적자는 오히려 확대되었다.
이는 관세가 문제의 근본 해결책이 아님을 명백히 보여준다.
결국 피해는 자국민에게: 가격 상승과 경쟁력 약화의 현실
관세는 외국 기업에 벌을 주는 행위가 아니다.
오히려 자국 기업과 소비자에게 그 비용을 전가하는 결과를 낳는다.
소비자 부담 증가
수입품에 관세가 붙으면 해당 제품의 가격은 당연히 상승한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수입품 가격이 오르면 경쟁 관계에 있는 미국산 제품 가격도 덩달아 상승하는 경향이 있다.
2018년 세탁기 관세 부과 이후, 미국 내 세탁기 평균 소매가격은 단기간에 12% 상승했으며, 이는 수입품뿐 아니라 미국산 제품에도 해당했다.
결국 모든 소비자가 이전보다 훨씬 비싼 가격을 지불해야 하는 것이다.
한 연구에 따르면, 당시 세탁기 관세로 일자리는 약 1,800개 증가했지만, 소비자 비용은 총 15억 달러나 늘어나 일자리 하나당 81만 5천 달러(약 11억 원) 이상의 비용이 발생한 셈이었다.
결국 자국민의 지갑을 털어 소수 기업의 이익을 보전해 주는 꼴이다.
자국 산업 경쟁력 약화
관세는 자국 산업 보호라는 명분과 달리, 장기적으로 경쟁력 약화를 초래할 수 있다.
당장은 수입품과의 가격 경쟁에서 유리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생산에 필요한 부품이나 중간재 상당 부분을 여전히 수입에 의존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예: 미국 테크 기업 서버의 70%는 멕시코, 20%는 대만에서 수입)
이 부품들에 관세가 붙으면 생산 비용이 상승하고, 이는 고스란히 최종 제품 가격 상승으로 이어진다.
또한, 상대국의 보복 관세는 미국 제품의 수출 경쟁력을 떨어뜨린다.
(2018년 중국의 미국산 콩 보복 관세로 미국 농가 타격, 정부 보조금 투입)
보호 장벽 안에서 안주하게 된 미국 산업은 혁신 동력을 잃고, 결국 국제 시장에서 도태될 위험에 처한다.
이는 미국 자동차 산업이 1980~90년대 이미 겪었던 시나리오의 반복일 뿐이다.
첨단화되고 고도화된 현대 산업 구조에서 모든 것을 자국 내에서 생산하겠다는 발상은 비현실적이며 비효율적이다.
세계 질서의 균열: 신뢰 잃는 미국, 흔들리는 동맹
상호 관세 정책은 경제적 문제뿐 아니라, 미국이 주도해 온 국제 질서 자체를 흔드는 행위다.
경제 원리와 국제 규범 무시
이 정책은 데이비드 리카도의 '비교 우위'라는 기본적인 경제 원리를 정면으로 부정한다.
모든 것을 직접 만드는 것보다 각자 잘하는 것에 집중하고 교역하는 것이 모두에게 이익이라는 원칙을 무시하고, 비효율적인 자급자족 경제를 강요한다.
미국이 GPU 생산에 집중하는 대신 나사까지 직접 만들어야 한다면, 이는 명백한 자원 낭비이자 비효율이다.
또한, 특정 국가에만 차별적인 관세를 부과하는 것은 세계무역기구(WTO) 규정 위반 소지가 크다.
이를 회피하기 위해 '국가 경제 비상사태'라는 명분을 내세우는 것은 국제 사회의 신뢰를 스스로 깎아내리는 자충수다.
동맹 관계 약화
미국은 수년간 중국 등을 견제하기 위해 동맹국들의 협력을 강조해 왔다.
그러나 정작 동맹국들에게 비합리적인 관세를 부과하며 경제적 압박을 가하는 것은 모순적인 행태다.
FTA와 같은 상호 호혜적 약속은 동맹국들이 미국을 약탈하기 위해 만든 것이 아니라, 양국 모두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에 체결된 것이다.
힘을 앞세워 일방적인 요구를 관철하려는 태도는 동맹의 근간을 흔들고 미국의 외교적 입지를 축소시킬 뿐이다.
힘이 세다고 마음대로 규칙을 바꾸고 따르라고 강요하는 것은 국제사회에서 존중을 잃는 가장 빠른 길이다.
미국이 그동안 세계 질서 유지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온 이유는 그것이 궁극적으로 더 적은 비용으로 국익을 지키는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팍스 아메리카나'를 포기하는 대가는 결코 싸지 않을 것이다.
자주 묻는 질문 (Q&A)
A
미국이 특정 국가와의 상품 무역에서 기록한 적자액을 해당 국가로부터의 총 수입액으로 나눈 뒤, 그 값을 다시 절반으로 줄여서 관세율을 정하는 방식입니다.
경제적 논리보다는 단순 계산에 기반한 비합리적인 방식입니다.
A
수입품 가격 상승은 물론, 미국산 제품 가격까지 동반 상승시켜 결국 소비자 부담을 크게 늘립니다.
2018년 관세 조치로 미국 가구당 연평균 생활비가 이미 증가했으며, 이번 조치로 부담은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A
상호 관세는 특정 국가에 차별적 관세를 부과하므로 WTO의 최혜국 대우 원칙에 위배될 소지가 큽니다.
또한, 이미 관세 철폐 등을 약속한 FTA 정신에도 정면으로 배치되어 국제 무역 질서의 근간을 흔들 수 있습니다.